제목   |  영어학습의 원칙에 대한 오해 : 정통 본토영어가 최고? 작성일   |  2009-05-04 조회수   |  6571

정통영어가 뭐죠? 한국인의 발상으로는 좀처럼 구사하기 어렵고 원어민들 사이에는 자주 쓰이는 영어란 뜻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이 말은 마치 한국의 영어 교재에 담긴 영어나 한국 TV나 라디오에서 원어민이 강의하는 영어는 정통영어가 아니라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지요.

원래 똑같은 표준영어 표현이라 하더라도 원어민들 사이에 쓰이는 것과 외국인과 원어민 사이에 쓰이는 영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원어민들이 한국과 같이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나라에 오면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 자체가 달라집니다. 사용하는 어휘, 구문, 말을 이어가는 방법 등 모든 것을 한국인 학습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조정하기 때문이지요.

혹시 처음부터 정통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부터 원어민들 사이에 쓰이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라면 이는 매우 잘못된 주장입니다. 만일 한국의 초급/중급 학습자들에게 원어민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처음부터 그대로 제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습득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 표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정통영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 예 중 후자를 정통영어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a. 이 노래를 끝까지 한 번만 더 연습해 봅시다
Let's practice the song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ne more time.
Let's go through the song one more time.
b. 이 길로 가면 대학 후문이 나옵니다
If you take this route, you'll get to [find] the back gate of the university.
This route will take you to the back gate of the university.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전자보다 후자가 더 고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자는 우리말의 발상과 비슷하여 익히기가 훨씬 쉽습니다. 모국어 습득이 끝나고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경우는 모국어 간섭현상 때문에 누구나 전자처럼 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모국어의 논리를 외국어 습득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군요.

그리고, 위의 두 가지 예에서 후자가 더 간결하고 원어민들 간에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자주 쓴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후자를 정통영어라 부른다면 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2000년 세계 TESOL의 ‘New Perspective in Grammar Teaching’이란 강연에서 들은 내용인데, 그 학자에 의하면 원어민이 사용하는 구문은 비원어민이 사용하는 구문에 비해 3단계 정도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얘기라도 한국인의 영어보다 원어민의 영어가 더 알아듣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원어민간에 사용되는 소위 ‘정통영어(?)’는 한국인처럼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더욱이 초급/중급수준에서는 이상적인 입력자료(input)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영향을 받아 우리말의 발상과 비슷하고, 약간 broken English가 포함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초급/중급수준에서는 불가피합니다.

지속적으로 양질의 영어에 노출이 되면 차츰 영어적 발상을 닮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원어민들이 사용하는 소위 ‘정통영어’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 처음부터 정통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한 면이 있습니다.

 

출처: 영어 등대 이찬승 http://www.leechanseung.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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